◆ 권세 있는 예수님의 교훈(요한복음 7:10-24)
명절이 되어 이미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의 화제는 온통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명절에 예수님도 당연히 올라오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가 어디에 있느냐”(11절) 하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수군거리며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었는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듣고 “그는 좋은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는 사람들을 미혹케 한다” 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12절). 다만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들을 두려워하여 드러나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인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지켰는데, 명절 중간 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시고 은밀히 성전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던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다 감탄을 하였습니다(마7:29).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 자체시요, 말씀 자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권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자 사람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15절)고 말합니다. 당시에 율법을 가르치려면 율법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랍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의문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교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절). 예수님은 아버지의 성령으로 충만하셨기에 아버지의 성령께서 감동으로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전하셨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교훈은 아버지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기에 예수님의 교훈은 대단히 은혜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의 교훈에는 진리의 힘이 느껴지고 권세가 있었습니다.
참 되시고 거짓이 없으신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자기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시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셨습니다(17~18절).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성령의 감동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주실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 역시 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감동이 되고 깨달음이 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은 그 마음이 선하기 때문에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예수님의 교훈을 들을 때 그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교훈을 들으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교훈인지를 깨달아야 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머리로만 알았지, 말씀을 깨닫지도 못했고, 정작 그 말씀대로 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세 선지자를 대단히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고, 그것을 또한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잘 알고 지킨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임의대로 적용하여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정죄하고 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19절) 라고 하며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반문했습니다(20절). 백성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하셨습니다(21절). 여기서 ‘한 가지 일’이란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병 고치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상하게 여기고 안식일 날 병을 고침으로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할례를 허용하는 것을 예로 들어 율법의 참된 의미에 대해 깨우쳐 주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아들을 낳으면 생후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할례는 모세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430년 전인 조상 아브라함 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면서 내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치료하여 전신을 건강케 한 것을 가지고 왜 노여워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 하신 말씀의 요지는 한 마디로 “너희가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면 안식에 선을 행하는 것 또한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런 말씀입니다. 사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하면서 율법의 잣대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했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율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표시로 행하는 할례 의식을 안식일 계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할례 받는 날이 안식일일 경우 할례를 받도록 임의로 예외 규정을 만들어 시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할례를 행하는 것을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입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신 10:16).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24절)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들을 대할 때 결코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볼 수 있는 분이시기에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이나 동기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기준을 삼고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도 모두가 다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과 정보들을 기초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직 공의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오직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상대방에게 나쁜 감정을 품거나 자신의 잘못된 지식과 선입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직 공의로 판단하시기에 그 판단은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죄를 짓지 않은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권세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오직 공의의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나눔>
도입질문. 한 주간 나의 화제는 무엇이었는지 나누어 주세요.
나눔1. 한 주간 감사한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나눔2.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나눔3. 사람의 외모를 보고 잘못 판단하여 오해한 적이 있나요?
나눔4.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