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생수를 마셔라(요한복음 7:37-39)
오늘 본문은 명절 끝날 곧 초막절 마지막 날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7일간 초막이나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광야 생활을 기념하고, 제 팔일에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 위해 성회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초막절 축제 기간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실로암 연못에 가서 물을 길어 와서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을 매일 거행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제사장들이 따르고, 뒤이어 순례객들이 따라갑니다. 이때 한 제사장이 금 물병에 실로암 물을 떠서 담으면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 말씀을 외치면 함께 합창을 합니다. 그들은 즐거운 나팔 소리와 함께 시가행진을 벌이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제단을 일곱 번 돈 다음 제단 옆에 있는 대야에 물을 붓고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이때 백성들의 기쁨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갈증으로 고통 당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물을 주신 것에 감사하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7일 동안 의식을 거행하고 제 8일째는 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거룩한 성회로 모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렸습니다. 사실 초막절에 물을 길어와서 붓는 행사는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목마른 인생들에게 영적인 생수를 마시게 함으로 영혼에 만족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예표하는 의식이었지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제 초막절 축제가 끝나면 사람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마셨던 생수를 잠시 떠올릴 뿐 각자 돌아가서는 또 다시 영적으로 목마른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제 8일째 되는 날, 모여 있는 백성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7절). 예수님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의식이 아니라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 자신이며,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을 만날 수 있다고 안타깝게 외치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살면서 가지고 싶고 다 가져보고, 먹고 싶고 다 먹어보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려본다고 할지라도 뭔가 모르게 항상 목말라 있습니다. 그 목마름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인간의 내면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거기에서 참된 만족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담대히 외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내게로 와서 마신다’는 표현이 38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의 강’은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39절). 예수님께서 성령을 단지 ‘생수’라고 하지 않고 ‘생수의 강’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아무리 마셔도 고갈되지 않고, 아무리 퍼내도 계속해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솟아나오게 됩니다. 성령의 지혜, 능력, 권능도 나옵니다. 성령의 은사도 나옵니다. 성령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선물 중에 가장 귀하고, 가장 좋은 선물이기 때문에 한없이 좋은 것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의 약속이 언제 성취되었습니까? 바로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성령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마지막 당부의 말씀 곧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4절)는 말씀에 순종하여 120여명의 제자들이 마가다락방에서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직 기도에 힘쓰다가 10일만에 성령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제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자 나타난 몇 가지 변화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어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각 나라 말로 유창하게 하나님의 일을 말했다는 것입니다(행2:4). 두번째는 배우지 못한 베드로와 같은 사람도 담대히 일어나서 복음을 전할 때 하루 3천명, 5천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행2:41, 행4:4). 세번째는 사도들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으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행2:43). 못 걷는 사람이 걷고, 중풍병자가 낫고, 그림자만 덮여도 치료되고, 더러운 귀신도 쫓겨났습니다. 네번째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다는 것입니다(행2:44-45). 다섯번째는 성령으로 말미암이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것입니다(행2:46). 성령은 기쁨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면 마음에서 기쁨의 생수가 늘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들이 성령 세례를 받는 순간 일어난 것입니다.
본문 39절에 ‘아직’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직은 그들에게 성령께서 계시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이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계실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 성령 받을 사람이 있기에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으라” 큰 소리로 외치셨던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신 분들도 때가 되면 반드시 성령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성령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해서 기쁨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게 될 줄 믿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교회 나오는 것이 기쁘고 말씀 듣는 것이 기쁘고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얼굴이 다릅니다. 얼굴이 환하고 빛이 납니다. 성령 충만하기에 마음에 근심의 빛이 없고 항상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활력이 넘칩니다. 성령님께서 날마다 새 힘을 주시고 삶의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일부러 성령을 거역하고 스스로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면 성령님은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나의 인생길을 인도해 가실 수 있도록 늘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한대로 우리는 구원의 날까지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성령님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해서 성령님 근심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또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말씀대로 우리는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천국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쁨으로 일하실 수 있도록 늘 복종하심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 나눔>
도입질문. 한주간 크게 웃어본 일이 있었나요?
나눔1. 한 주간 감사한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나눔2. 성령을 받은 후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나눔3. 성령충만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나눔4. 성령의 생수를 마시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