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0-09 17:20
나눔지245호 / 양과 염소 비유의 교훈
 글쓴이 : 세종로
조회 : 1,196  
   세종로말씀&나눔지_245_.pdf (322.7K) [1] DATE : 2018-10-11 22:26:08
■ 제목 : 양과 염소 비유의 교훈
■ 본문 : 마태복음 25:14-30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31~33).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탄생하실 때는 낮고 천한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초림의 목적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는 그런 낮고 천한 종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본연의 영광으로 오시니 그 위엄이 얼마나 크고 장엄하겠습니까? 그것도 천사들을 대동하고 영광스럽게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구원 받을 자들과 심판 받아 멸망 받을 자들을 각각 구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구분하는 모습이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양과 염소를 함께 방목하여 키우는데, 낮에는 양과 염소를 함께 두지만, 밤에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여 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팔레스틴 지방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데, 양은 추위에 강하지만 염소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구분하여 각각 다른 우리에 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는 이유는 양과 염소는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들의 성향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양은 온순하고 다투지 않습니다. 목자가 인도하는대로 잘 순종합니다. 언제나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서로 붙어서 잠을 잡니다. 그러나 염소는 온순하지 않고 잘 다툽니다. 무엇이든 뿔로 공격하고 싸우려고 달려듭니다. 주인이 끌고 가려고 하면 따라가지 않으려고 발로 버팁니다. 언제나 흩어져서 다닙니다. 이처럼 양과 염소는 그 성향이 정반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33절)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에 염소와 같이 왼편에 있는 자들은 영벌에 들어가게 되고, 양과 같이 오른 편에 있는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46절).

그러면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구원 받을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요, 그 믿음은 이웃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옷이나 먹을 것이 없는데, 실제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고 그저 말로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약 2:15-17). 이와 같이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정말 구원 받을 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구분하실 때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실천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구분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형제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아니하고, 헐벗었을 때 옷 입히지 아니하고, 병들었을 때 돌보지 아니하고, 옥에 갇혔을 때 찾아보지 아니한 사람은 입술로는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믿음은 행함이 따르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죽은 믿음이기에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장 17-18절에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사랑도 더 깊어지고 온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보면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보이고 있는가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행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창세기 22장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시며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고, 신뢰하고 있는지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선배들 중에는 믿음의 행함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여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도 요한의 마지막 제자였던 폴리캅 감독은 순교할 때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주님을 사랑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폴리캅이 마지막 순교할 때 그의 믿음의 고백을 통해 그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 직전 로마의 관리들은 그에게 예수님을 저주하고 로마 황제를 주님이라 부를 것을 회유하였지만, 그는 “내 나이 86세가 되도록 주님은 단 한 번도 나를 부인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부인할 수가 있겠소” 라고 고백하며 당당히 화형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행함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큰 만큼 주님에 대한 사랑도 큽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형제도 사랑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나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고 위선입니다. 믿음이 있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라 할지도 무관심하지 않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랄수록 이웃에 대한 섬김도 더 풍성해지셔서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 받을 양과 같은 성도로 인정 받아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나눔

도입질문. 양이나 염소를 직접 본 적이 있나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나눔1. 한 주간 감사한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나눔2.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실천해 본 일이 있나요?

  나눔3.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말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나눔4.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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