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23) 세상을 끊어야 영혼이 산다 (요한일서 2:15-16)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계속해서 길을 가던 크리스천은 작은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크리스천이 작은 언덕에 올라가서 앞을 내려다보니 믿음씨가 앞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따라잡았습니다. 그 후 함께 동행하게 된 크리스천과 믿음씨는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각자가 겪은 모든 일들을 주고 받으며 다정하게 걸어갔습니다.
천로역정 책에 보면 주로 믿음 씨가 겪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먼저 믿음씨는 좁은 문을 지난 뒤 ‘음란’이라는 여자는 만나 곤경에 처했는데, 말씀 묵상을 하며 그녀의 유혹을 물리쳤다고 했습니다. 그 뒤 고난의 산 중턱에서 첫 사람 ‘아담’이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의 세 딸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결혼시켜 주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따라 갈 뻔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그의 종으로 살 것 같아 그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빠져 나왔습니다. 곧 이어 한 남자가 그를 따라와서 첫 사람 아담의 유혹에 따라갈 마음을 갖는 죄를 지었다며 사정없이 마구 때렸는데, 그 남자는 ‘모세’였고, 그를 만류한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는 모세로 말미암은 율법은 오직 정죄하고 심판하기만 하고 용서나 자비가 없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복음은 우리를 용서하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믿음씨는 세상에서 ‘불만’이라는 남자를 만나 다시 돌아가자고 회유를 당하기도 하였고, 세상 것에만 중심을 두고 하나님 믿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수치’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씨가 겪은 사건들을 보면서 이것은 결국 세상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 것을 끊지 못하거나 무엇을 끊어야 할지 몰라 여전히 세상 것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세상이 무엇이며, 또 세상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해가 되는지 안다면 아마 신속히 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우리 안에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해 결국 영원한 사망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세상을 끊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세상의 정욕이 들어오는 통로인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그것에 끌리는 속성을 말합니다. 눈으로 보고 즐기면서 더 큰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 안에 있는 죄성에 계속해서 힘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않으면 세상을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폭력적이고 분노가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폭력적이고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면 결코 마음의 분노를 버릴 수 없습니다. 마음에 음욕이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음란물을 본다면 마음의 음욕을 뽑아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관리를 철저히 해서 안목의 정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본다면 결국 원수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간음죄를 범할 때도 사탄이 이 안목의 정욕을 통해 공격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눈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간음죄와 살인죄까지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천로역정의 믿음씨는 좁은 문을 지난 뒤 만나게 된 ‘음란’이라는 여자가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했을 때 음녀의 유혹에 홀리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을 끊으려면 세상 정욕이 들어오는 통로인 눈을 지켜야 하고 눈을 통해 들어오는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죄 짓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육신의 정욕을 없애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육신이 죄를 범하고자 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근본 죄를 짓고자 하는 죄성이 있는데, 이것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나게 되면 육신의 정욕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움, 시기, 질투, 욕심, 사심, 탐심, 판단, 비판, 정죄, 분노, 간음 등 마음에 이런 죄성이 있으면 이 속성대로 행하고 싶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정욕입니다. 특별히 육신의 정욕은 음행과 음란 등 성적인 죄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정욕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이상 세상의 것을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과 기도로 내 안에 있는 육의 속성들을 버려나가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간절히 뜨겁게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육신의 정욕을 버려나갈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에서 믿음씨는 첫 사람 아담이 많이 쾌락거리를 주고, 원하다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딸들과도 결혼시켜 주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러나 이내 평생 정욕의 노예가 되어 살다가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첫 사람 아담에게서 도망쳐 나왔던 것을 보게 됩니다. 세상 정욕이 결국 그를 사망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즉시로 거기서 빠져 나왔습니다. 아담이 그를 다시 세상 정욕으로 이끌어가려고 온힘을 다해 끌어 당겼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세상 정욕으로 이끌어가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즉시로 세상 정욕에서 떠나야 합니다. 단호하게 세상 정욕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셋째로,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이란 자기가 이룬 부나 명예, 지위, 권세 등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때론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고 교만하게 행동할 수가 있습니다. 또 은연중에 자식을 자랑하거나 학벌을 자랑하기도 하고, 자신의 외모나 가문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에는 이러한 자랑은 다 허탄한 자랑이요 악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씨가 겸손의 골짜기에서 만났던 ‘수치’라는 사람이 바로 이생의 자랑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처럼 돈많고 똑똑한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을 믿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치며 순례자들은 다 낮고 천한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요, 오직 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씨는 그런 ‘수치’라는 사람을 향해 호되게 책망하며 물리쳤습니다. 수치라는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믿음의 순례자들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 이런 이생의 자랑이 있다면 이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뜨겁게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가운데 세상을 이기고, 정욕을 이기고 원수 마귀를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