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26) 시험을 이기는 비결(고린도전서 10:12-13)
절망의 성에서 빠져나온 크리스천과 소망씨는 계속 순례의 길을 걸어 왕의 기쁨 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꽃들과 맑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목도 축이도 몸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떼를 먹이고 있는 목자들을 발견했습니다. 네 명의 목자들이 나와 두 사람의 여정을 격려하기 위해 산 위 이곳 저곳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남은 순례의 여정을 끝까지 믿음으로 완주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목자들이 크리스천과 소망씨를 보내면서 지도 한 장을 주어 보내지만, 영화에서는 목자이신 주님께서 두 사람에게 하신 조언의 말씀이 지도로 묘사됩니다. “아첨쟁이를 조심할 것과 마법의 들판에서 절대 잠들지 말 것, 끝까지 천국 도시의 빛을 따라 갈 것” 이 세 가지 말씀을 주고 주님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길에서 만난 아첨쟁이의 말에 속아 천국 도시의 빛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아첨쟁이의 유혹에 넘어가 자랑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마귀의 시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에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된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시험이 왔을 때 시험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시험을 이기려면 자신도 죄에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에 12절에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순간 방심하면 넘어질 수 있기에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시험에 넘어진 것은 그 마음 가운데 교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첨쟁이가 아첨하듯 크리스찬을 칭찬하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겸손하게 반응하다가 이내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옆에서 소망씨가 두려움의 웅덩이에서도 살아남고 굴욕의 골짜기에서도, 절망의 성에서도 빠져 나왔다고 칭찬하자 크리스천도 자화자찬하기 시작합니다. 자꾸 칭찬하고 자만심을 부추기자 결국에는 크리스천 안에 있는 교만의 마음이 그물망으로 엮기게 되어 스스로 그 그물망에 포박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이 있습니다. 교만을 비롯해서 미움, 시기, 질투, 욕심, 사심, 탐심, 분노, 혈기, 간음 등 죄의 속성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를 역사해서 죄를 짓도록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죄성을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말씀한대로 우리는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악이 온전히 버려지면 어떠한 사탄의 시험이 온다고 할지라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험을 이기려면 유혹이 왔을 때 피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이 왔을 때 그 시험을 이기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피하는 것입니다. 아예 시험 받을 자리에는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시험’은 성도를 죄에 빠지게 하려는 마귀의 시험을 말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당할 때 감당할 만큼만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시험 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을 내셔서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가 바로 그랬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 자리에 있으면서 유혹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하고 설득한 것이 아닙니다. 유혹을 해온 그 손길을 뿌리치고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요셉이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 요셉도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심히 부패한지라 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죄 지을 환경만 주어지면 누구나 죄를 짓고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유혹이 올 때 죄를 짓지 않으려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눈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성적인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음란한 영화나 동영상, TV 등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멀리하지 않고 계속 보면서 유혹을 이기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한들 결국에는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술을 끊기로 했으면 아예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냥 안주만 먹으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고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와 같이 유혹이 왔을 때는 그것을 피하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인 것입니다.
셋째로, 시험을 이기려면 시험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입니다.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요셉처럼 그 시험이 성적인 유혹이든지 욥처럼 극심한 시련이든지 어떠한 시험을 당하든지 능히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에게는 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 그 자리를 피하게 함으로써 능히 감당하게 하셨는데, 욥에게는 사탄이 주는 시험을 잘 견디게 함으로써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욥이 사탄에게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시험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시험에서는 그의 소유에는 손을 댈 수 있어도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고, 두번째 시험에서는 그의 몸에는 손을 대어도 그의 생명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우리를 시험할 수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만 우리를 시험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극한 시험일 때는 우리에게 피할 길을 내셔서 능히 감당하게 해 주십니다.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은 감당할 힘과 지혜를 주시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을 만나기도 하고, 마귀의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당할 때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전화위복이 되고 축복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 시험을 허락하신 것이기에 우리가 깨어 기도하기만 하면 우리는 어떠한 시험이나 유혹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어떠한 시험이 왔다고 해도 항상 넘어질까 조심하는 가운데 마귀의 유혹은 피하고 시험은 잘 견디는 가운데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